어도비 플래시(Adobe Flash), 2020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어도비 플래시가 2020 년 말에 지원을 중단한다고 합니다. (기사보기 >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70726065937)

솔직히 플래시의 하락세가 시작된지 꽤 오래되어서 곧 플래시 지원이 끊긴다는 것보다 아직도 지원을 끊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놀라운데요.
플래시 액션스크립터로서 경력을 시작했던 저로서는 신기한 기분이 들어서 포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플래시는 1996년에 Macromedia 사에서 만들고 2005년에 Adobe가 인수해 지금까지 왔습니다. 웹상에서 영상이나 게임 등 HTML 로는 구현하기 힘든 프로그램등을 사용할 수 있게끔 해준 플러그인의 일종으로, 플래시로 무언가를 만들면 웹에서 배포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에 빠르게 확장되어 나간, 인기 있는 기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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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유물들

제가 플래시를 배우고 있던 2007~2009년, 플래시의 인기는 거의 정점을 찍고 있었습니다. 웬만한 웹사이트나 게임은 물론이고 많은 터치폰 UI, IPTV UI, 냉장고 터치스크린 등이 플래시로 제작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삼성이 플래시로 모바일 UI를 제작할 수 있게끔 플래시 Lite 버전을 만들어달라고 Adobe 사에 직접 요청했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Flash Lite 로 UI 를 제작했던 LG 뉴초콜릿폰(2009)
사진출처: http://pcpinside.com/1813

매 주 전세계 웹사이트 순위를 매겨 보여주는 awwwards (https://www.awwwards.com/) 에는 플래시로 만든 화려한 모션의 사이트로 도배되어 있었고, papervision3d 같은 오픈 라이브러리를 이용한 풀 플래시 3D + 물리엔진으로 만들어진 게임 등이 많이 있었죠.

예를 들면 이런 것들요.

영상출처: https://youtu.be/XNAFFhAkGC8

나날이 높아지는 인기에 힘입어 Adobe는 플래시로 데스크탑용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는 Flex SDK, Adobe AIR 등 확장 버전들을 내놓기에 이르렀습니다.

2010년, 플래시는 전세계 90%의 PC에 설치되어 있었고, 웹상의 비디오 콘텐츠 75%가 플래시로 만들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해 아이폰이 나오고,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에서는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합니다.
잘 나가던 Adobe 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리였죠.

잡스는 플래시가 모바일에서 사용하기에는 퍼포먼스가 너무 안좋고 "CPU 먹보"라서 못 쓰겠다며 대신 웹에서 비디오 등을 재생하기 위해 당시로선 거의 쓰이지 않던 HTML5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일부에서는 플래시 게임 같은 것이 아이폰 웹브라우저에서도 돌아가면 굳이 아이폰 앱스토어에서 앱을 깔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애플이 이를 견제하여 플래시를 막았다는 이야기도 돌았습니다. 물론 애플은 그런 이야기를 부인했지만. (스티브 잡스의 해명글 번역본: http://photodiary.tistory.com/46)

아이폰의 인기와 함께 Adobe 는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 무렵 Adobe 웹사이트를 들어가면 이런 광고 배너가 커다랗게 떠 있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egloos.zum.com/softhard/v/3698026

필사적이다 못해 처절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ㅋㅋ

아이폰에 이어서 몇 년 후 안드로이드에서도 플래시의 지원을 끊기로 했고 스마트폰이 확산되고 모바일의 영역이 확대될수록 플래시의 입지가 줄어들기 시작했죠.

웹사이트를 제작하는 고객들은 이제 웹과 모바일 두 곳에서 최적화된 웹사이트를 만들기 위해 모든 웹사이트에서 플래시를 제거하도록 요청해왔고 화려하고 반짝이는 모션과 영상으로 뒤범벅이었던 웹사이트들은 아주 심플하고 단순하게 바뀌게 됩니다.

결국 이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던 Adobe 는 발빠르게 플래시의 확장인 AIR로 앱을 만들 수 있게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걸로 만든 대표적인 케이스가 애니팡 게임 1탄입니다. (2탄은.. 퍼포먼스땜에 결국 네이티브로 재개발;;)

애니팡
이미지 출처 http://smarthuman.tistory.com/4

플래시로 앱을 만들면 강점은 화려한 모션과 다양한 플랫폼의 앱을 네이티브보다 훨~씬 더 쉽고 빠르게 개발할 수 있다는, 한마디로 생산성이 좋다는 것이구요. 나쁜점은, 잡스 말대로 "CPU 먹보"라서 퍼포먼스가 너무 안좋다는 점. 이로 인해 플래시는 결국 앱 시장에서도 물러나게 됩니다.

당시 플래시가 인기의 절정에서 시장에서 외면받기까지, 에이전시에서 체감하기로는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나마 저는 플래시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되서 다른 영역으로 발을 옮기는 데 무리가 없었지만, 10년 이상 플래시 개발만 하던 주변 개발자분들 중엔 많이 힘들어하다가 다른 분야에 적응 못하고 아예 IT 업계를 떠난 분도 보았습니다.

그 때 저는 20년 이상의 역사가 있고 전세계 90% 이상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던 글로벌한 기술 생태계가 이렇게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적어도 제가 플래시를 시작할 당시에는 앞으로 플래시로 할 일이 많아 보였거든요. 예상치 못한 플래시의 몰락(?)으로 전세계 수백만명의 개발자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진로를 바꿔야만 했습니다.

플래시가 아직 웹 이외에 DID 터치스크린, 이러닝 등 근근히 명맥은 이어가고 있지만 사실상 예전만한 영향력은 없죠. 어도비에서는 HTML5 로 플래시 같은 애니메이션을 쉽게 만들수 있는 다양한 툴들을 내놓고 있는데, 아직 플래시 IDE 만큼은 아닌것 같습니다. (결과물 질이 낮아서 차라리 플래시로 만든거 gif 로 export 하는게 나은 수준)

기술은 언제나 변하게 마련이고 특히 IT 영역에서는 이런게 심하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고, 배우고 있는 기술들을 언제든지 버리고 새로운 기술로 갈아탈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고, 기술 중심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에 집중해야한다는 점을 플래시의 시작과 끝을 보면서 많이 느꼈습니다. 비단 IT 영역뿐만 아니라 어디든 그렇겠지만.. 평생 공부해야 하더라구요 ^^ IT쪽은 다른 분야보다는 조금 더 (150%쯤?) 공부하고 대비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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